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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경제 아이디어 문화/나의생각

[104] 포커페이스

by 한 별_ 202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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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페이스


 

간혹 영화를 보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한주의 모든 일이 끝난 평화로운 주말,

그 다음날 출근이 아쉬운 주말 저녁,

괜스레 일찍 잠들기 싫은 그런 날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공포와 판타지.

특유의 긴장감을 주는 공포영화 음악과 분위기에 푹 빠지거나,

판타지 주인공과 함께 그 신비로운 모험 얘기를 보다보면,

두어 시간 남짓한 주말 저녁도 꽤 만족스럽게 마무리되곤 합니다.

 

반면, 유독 손이 가지 않는 장르도 있습니다.

바로 로맨스와 슬픈 이야기들.

몰입이 쉽지 않은 데다,

주말의 마지막을 슬픈 감정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경향은 어른이 되면서 더 뚜렷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제가 가끔 슬픈 영화를 찾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마치 감정을 정리하듯, 묵은 마음을 털어내듯.

이름하여, ‘울어야 하는 날’.

 

 

공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갈수록,

감정을 참고 숨기는 일이 점점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럴수록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의 벽은 제 앞에 높이 쌓여갔고,

그 벽이 완성되어갈 즈음엔

슬픈 장면을 마주해도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울음이 나와야 할 순간인데,

머릿속도, 마음도 고장 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가 계속되었고,

저는 마치 조커를 손에 쥔 ‘포커페이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햇빛이 좋은 어느 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제 얼굴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냥 하늘이 유독 맑았고, 햇빛이 반사되는 그 창문 모퉁이가 슬퍼 보였습니다.

한두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오열이 되었을때쯤, 저는 작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 울고 싶었었구나.'

 

 

그 이후로 종종 '울고 싶은 날'에 괜스레 슬픈 영화를 봅니다.

울고 싶은 생각이 없다가도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오고,

마음 속 잔잔했던 웅덩이 위로

비가 내리고 작은 파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빗방울이 수면의 평온을 어지럽히는 만큼,

내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이 올라옵니다.

제가 혹독하게 외면해 왔던 제 '힘듦'과 '슬픔'을요.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마음껏 울어본 게 언제인가요?

지금 울고 있지 않은 건, 정말 행복해서일까요?

아니면, 울고 있는 ‘나’를 잊어버린 걸까요.

 

잠시 멈춰 서서,

여러분의 감정을 들여다보세요.

우는 건 결코 약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용기입니다.

 

 

 

우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강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조니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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