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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경제 아이디어 문화/나의생각

[45] 산소호흡기와 지옥

by 한 별_ 2025.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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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호흡기와 지옥


제목부터 의아하신 분들이 많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산소호흡기와 지옥 무슨 말이지?

어쩌면 벌써 눈치를 채신 분들도 계실 수도 있구요.

오늘은 일상 속 조금 차분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어제 오랜만에 술을 마셨습니다.

평소 술은 주말에만 마시고 되도록 평일에는, 특히 운동한 날에는 피하려고 하지만,

어제는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가장 친하고 존경했던 선배가 회사에서 나갈 준비를 하셔야 했기 때문이죠.

그게 자의적으로 일어난 일이면 축하의 박수를 쳐 드렸건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조금 씁쓸해집니다.

 

물론 슬프진 않았습니다. 가장 친했던 선배들이 여러 이유로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이런 일이 또 일어날거라 생각은 언제나 제 마음속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일이 언젠가 저한테도 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선배 걱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원체 집안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시고, 지금도 많은 부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리고 선배 스스로도 때가 되면 나갈거라 매번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항상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선배가 그만두지 않으시고 계속 회사를 다니셨던 건, 돈 때문이 아닌 저희들 때문이셨죠.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들과의 커피 한잔, 수다 한 조각, 웃음 한 모금.

그리고 사랑했던 자신의 직업.

그것들이 선배의 일상을 소소하게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 선배들이 나가게 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울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애써 환하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선배, 괜찮아요. 인사팀의 결정에 너무 매몰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인생이란게 좋은게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우리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만 봐요"

"회사 동네 많이 놀러와요. 다리 하나 건너면 선배 집이니까"

 

애써 답없는 생각들을 돌리려 열심히 운동도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녹음기를 킵니다.

주절 주절. 아무도 듣지 않을 속마음을 말이죠.

 

 

"나의 산소호흡기가 언제 끊어질지 몰라 눈만 꿈뻑꿈뻑. 천장만 바라 본다.

내 주위에 같이 누워 있던 동료 환자들은 어느샌가 하나둘씩 어느 건물 뒷편으로 사라진다.

누가 먼저인지 누가 뒤따라 가는지 그 순서에는 규칙은 없다.

그저 오늘은 내가 아니길, 내일 하루도 버텨주길. 애써 검은 눈만 깜빡인다. 

 

더 오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관리인에게 묻자, 차디찬 대답이 돌아온다.

방법은 하나입니다. 끈을 만들어 오세요. 더 크고 굵고 단단한 끈을 만들어 온다면,

누워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얇은 끈을 잘라내고. 당신의 끈을 이어 드리지요.

아니면 제발로 먼저 지옥으로 먼저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를 내어드리지요.

 

오늘도 검은 눈만 꿈뻑꿈뻑. 산소 호흡기를 입에 올린 채 쎄액쎄액.

얕은 숨만 쉬며 천장을 본다"

 

 

 

우리는 모두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숨을 쉽니다.

때로는 희미하게, 때로는 깊게.

누군가는 끈을 더 단단히 쥐려 하고, 누군가는 끊어진 끈을 바라보며 다음을 준비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마저도 지쳐 멈춰 서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또 하루를 견딥니다.

 

 

회사는 전쟁터라 하고, 밖은 지옥이라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옥이든 전쟁터든 결국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는 각자의 산소호흡기를 물고, 매일 같은 숨을 내쉬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웃음과 따뜻한 대화, 소소한 일상들이 우리의 호흡을 이어가게 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한 번 더 숨을 쉽시다.

그리고 내일도, 살아갑시다.

 

 

 

 

어떤 폭풍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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